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승호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사건의 배후는 [[흥선대원군]]인가 == 사건의 범인으로 신철균이 책임을 지고 [[능지처참]]을 당했으나 객관적으로 신철균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신철균은 직접적으로 폭탄 테러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관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로 죄를 받아 처형된 것이었다. 신철균이 죽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장모의 흥인군 집 화재 예언도 과연 그런 말이 있었는지의 여부조차 정확하지 않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사건의 진짜 배후는 대원군일 가능성이 있다. * 첫째로, 민승호의 집에 처음 불이 난 시점은 흥선 대원군의 권력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던 시점이었는데 민승호는 이때 고종의 편에 서서 흥선 대원군과 대적했다. 대원군의 입장에서는 부인의 친동생인 민승호가 자신을 배신한걸로 여겨 괘씸했을 것이고 며느리인 명성 황후가 민승호의 뒤에 있다고 여겨 민승호를 더욱 증오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대원군과 적대하던 흥인군의 집에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난 건 대원군의 격노로 인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 둘째로, 대원군은 고성능 폭탄을 동원할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는 전근대시기이고, 지금과는 달리 도처에 화학물질을 취급할 수 있는 시설도 없고 정제 및 폭약 제조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도 적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당시 사회상으로 폭탄 테러라는 사건 자체가 매우 희귀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끽해야 독약을 제조해서 암살을 시도하는 정도지 이렇게 위력적인 규모의 폭탄을 제조해서 테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대원군은 집권 기간 서양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갖가지 신무기 개발에 열중했다. 특히 청나라에서 들여온 [[해국도지]]는 큰 역할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개발된 폭탄이 바로 [[수뢰포]]였다. [[신헌]]의 주도로 개발된 이 [[수뢰포]]의 위력은 작은 배 한척을 박살내고 물기둥이 크게 솟구칠 정도의 위력이었다고 한다. 이정도 위력의 폭탄을 만들 기술이라면 대원군의 배경하에서 충분히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있는 폭탄을 만드는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 당시 민승호에게 뇌물을 위장한 폭탄을 전달한 사람이 방 안에서 열어볼 것을 권했다는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폭발의 위력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당시가 막 개항을 시작한 시점이라 외국에서 폭탄을 들여올 수도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 정도의 고성능 폭탄을 만들고 동원할 수 있는 건 [[방사능 홍차|대원군 정도의 배경이 아니면 안되었다는 점]]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대원군이 이런 테러를 지시했다면 과연 얻는 실익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민승호와 흥인군을 제거한다고 해서 곧바로 대원군이 다시 권좌에 복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원군 주도설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대원군의 수하들이 대원군 실각에 분노해 민승호와 흥인군에 대한 테러를 모의하고 실행한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설령 수하들이 진행했다 하더라도 대원군이 최소한 이 사건을 알고도 묵인했을 개연성도 있다. 고종은 민승호와 명성 황후 모친까지 살해된 이 사건으로 충분히 대원군을 범인으로 지목해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대원군 추종 세력의 반란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대원군은 내버려두고 대원군의 이전 측근이자 가까운 인사인 신철균을 배후로 지목해서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는 대원군에게 더이상의 경거망동을 하지말라는 고종의 경고 메시지였다는 추측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